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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일이란 무엇인가> 리뷰, 서평, 트레바리 독후감

by BM(Business Model) 2023.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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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란 무엇인가

 
 

고동진 사장님. MZ세대의 답은 이렇습니다. 

 

 

말투가 다소 무례하더라도 너그러이 봐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저를 있는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삶을 대하시는 태도에 관한 내용은 너무 좋은 말씀도 많아 형광펜도 많이 치면서 읽었지만, 회사 생활에 대한 견해에 관해서 만큼은 이의 제기가 더 많은 독후감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독후감은 책의 흐름에 맞춰 이의 제기가 주요 내용인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누었습니다.

 
 


<전반전>

솔직히 처음에는 책을 읽기가 너무 싫었다. 작가님이 서문에 꼰대 같은 소리가 될 수도 있으나 자신의 이야기를 여과 없이 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대로 썼다는 말씀을 하셨지만, 그래도 내게는 너무 꼰대 같았다. 특히나 직장인이 아닌 프리랜서, 1인 사업가, 한 회사의 대표를 꿈 꾸는 나에게는…

그렇다고 내가 직장 생활을 안 해 본 건 아니다. 편의점 업계 탑 회사에서도 일해봤고, 디지털 마케팅 스타트업에서도 일해봤다. 둘 다 결국 나왔지만, 공통적으로 싫었던 것은 딱 하나다. 


“성장을 가장한 갈아넣기 가스라이팅”


특히 책의 전반부는 직장 생활에서의 성실함과 노력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은데, MZ세대의 최고참 늙은이인 나는 동의할 수 없다. 갈아 넣으라고 아주 좋게 예쁘게 말씀해주시고 있지만, 난 그것보다 어디에, 어떻게 갈아 넣을지를 고민하는 게 더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에, 어떻게가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 방향과 일치한다면 갈아넣는 삶도 행복한 삶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직장인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솔직해지자. 회사의 비전과 한 마음이 되어 회사를 다니는 직장인이 몇이나 되며, 그 중 일을 매우 잘해서 임원까지 갈 사람은 몇이나 되고, 애초에 비전 자체가 옳은 회사가 몇이나 되는가. 난 그래서 차라리 내가 회사를 만드는 게 낫다고 본다. 
 
 
 


회사 생활의 시작은 바로 초기화입니다. 지금까지의 삶과 생각, 태도를 리셋하고 직장인으로서의 새로운 세팅이 필요한 것이죠.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한 생각과 태도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데, 그렇다면 지금 나보고 자아를 버리고 로봇이 되라는 말인가? 

높은 근무 강도도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극복하면 성장하고 발전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라는 말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이 책에 대체 “성실”이라는 단어가 몇 번이나 나오는지 세어 보고 싶은 심정이다) 부지런함의 정의가 과연 육체를 많이 움직이는 것인가? 내 생각엔 뇌가 더 부지런할 것 같은데…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는 성실하게 배워야 하고, 30대 중반 이후에는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한 창의력 등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또한 내 생각과 다르다. 창의력은 30대 중반 이후에 만들어야지! 라고 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결코 아니다. 오히려 30대 중반 이후는 창의력이 떨어지는 시기다. 일에 대한 판단력과 연륜은 높아질 수 있으나, 진짜 창의력은 이미 그 전에 폭발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10년, 누군가는 20년, 누군가는 30년의 생각과 경험이 쌓여 뿜어져 나오는 것이 창의력이다. 한마디로 내공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인데, 삼심대 중반 이후에 마음 먹고 바꾸는 것이 과연 쉬울까? 창의력은 나에 대한 순수한 믿음과 고민, 고뇌, 고독이 쌓여 단단한 자아가 완성되면, 저절로 향을 낸다.

말씀대로 조직에서의 창의력은 내가 말하는 창의력과 다를 수 있다. 예술적 능력, 상상력이 그닥 필요하진 않기 때문이다. 현장에 나가면 융합의 단서가 있고, 창의력의 시작이 있고, 새로운 답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럼 이게 성실이지 창의력인가?


직장 생활 스트레스


사장님이 그랬듯이 잠을 줄이고 외국어 공부를 하고 자기 개발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면서 또 본인은 과로로 인해 청력에 손상을 입었으니 건강에도 월급의 10%를 투자하라고 말한다. 어불성설이다. 

잠 줄이고 회사를 위해 시간을 쓰는 동안에 인간의 무의식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며, 이미 몸은 고장나기 시작한다. 작가님도 직장이란 매일매일 평가대에 올라서는 곳이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토 나오는 스트레스의 현장인가… 내가 의식하지 못해도 내 무의식은 극심한 피로를 느끼고 있다. 단지 예민한 사람은 그것을 인식하고, 조금 무딘 사람은 인식하지 못할뿐 이미 고장난 몸을 돈을 쓴 들 되돌릴 수 있는가? 돈이 그 때 와서 무슨 소용이고, 이미 돈이 많은 사람들은 돈으로 건강을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사장님처럼 자수성가 하려하는 이 땅의 많은 젊은이들은 몸이 고장나고 있는 젊은 시절에 돈으로 건강을 살만큼의 돈이 없다. (아, 대한민국 최고의 기업인 삼성전자에 다닐 소수의 사람들은 있을 수도 있겠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는 말을 명심하는 것이야 말로 만병통치약이다. 
 



개인에게 주어진 24시간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쓰는 건 그야말로 자유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회사 내에서는, 즉 내 시간과 노동을 투여하고 그 대가를 받는 동안에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이 회사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와 회사가 맺은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계약 좋다. 근데 왜 회사는 그 시간 약속을 쉽게 깨는가? 구성원에겐 계약을 엄밀히 준수할 것을 강요하면서, 왜 회사는 계약을 지키지 않는가? 계약서 상의 ‘갑’이라서? 말 그래도 갑질하는 소리다. 시간으로 계약을 맺었다면 일한 시간 만큼 보상을 해줘야 한다. 야근을 하면 계약 조건에 따라 돈을 주는 게 당연하다. 법을 지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성과로 보상을 주기로 했다면 성과에 맞는 보상을 해주는 게 맞다. 중요한 것은 ‘성과에 맞는’이다. 갤럭시 시리즈를 만든 건 사장님 혼자가 아니라고 하시는데, 사장은 사장님만 됐다. 나머지 직원들은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았는가? 회사가 갤럭시로 벌어들인 영업이익 대비 합당한 보상을 받았는지 묻고 싶다. 회사가 아니라 그 구성원들에게. 

대한민국에서 계약을 어기지 않는 회사가 과연 몇이나 될지 의문이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면 안 되듯, 지킬 수 없는 계약도 하면 안 된다. 그건 오너의 책임이다. 만약 구성원이 따라오지 못해 회사 일이 더디게 진행된다면? 그것도 그 구성원을 뽑은 사람의 책임이다. 구성원은 계약에 정해진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만큼 했는데, 더 열심히 안 했다고 타박할 자격이 회사에게 있는가? 스트레스 받고 힘들어서 못하겠는데, 그걸 억지로 밀어붙일 자격이 있는지 묻고싶다. 아니 계약서에 그런 내용이라도 있는지 묻고싶다. 

 
 
 



작가님은 사회 생활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후배가 “어차피 그만두면 안 볼 사이에, 잘 대할 필요가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고, 매우 상식적인 내용을 왜 궁금해 하는지 의아해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원인을 코로나로 인한 비대면 환경과 거리두기, 그에 따른 인식의 변화, 세대 차이로 생각하셨다. 코로나 3년 때문에 30년을 살아 온 사람의 인식이 바뀐다? 난 아니라고 본다. 그보다는 오히려 핵 가족화와 같은 거시적 변화가 더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쉽게 말해 단체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그냥… 세상이 바뀌었다. 코로나는 그 중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 
 
 


조직에서의 삶을 위해 가져야할 중요한 덕목은 스피드라는 말은, 좀 뼈를 때려야 될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래서 갤럭시가 절대 아이폰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스마트폰이 나오니까 시장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무조건 빨리 비슷한 제품 만드는 것. 거기엔 철학과 예술과 사랑이 없다. 스티브잡스의 자서전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가 어떤 생각으로 매킨토시와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를 만들었는지 알 것이다. 다 나름의 이유, 철학이 있다. 예술적 디자인에 대한 집요함이 있었다. 사용자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있다. 


 

갤럭시와 아이폰

 
 
갤럭시에는 그게 없다. 난 일부러 갤럭시와 아이폰, 태블릿 기기 등을 번갈아 쓰는 편이다. 뭔가 좌뇌 우뇌를 다 발달 시키는 느낌도 있고, 두 회사의 기술과 생각을 느끼는 것도 재밌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론적으로 갤럭시의 기술력은 아이폰을 이겼을지 모르나, 철학은 이기지 못했다. 철학은 갈아 넣는다고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숲길을 산책하고, 여유롭게 커피를 한잔 하면서, 머리를 비우고 운전을 하면서, 시간을 가질 때 생각이 정리된다. 그래서 철반 동기들이 그렇게 술을 마셨나보다....;;;
 
 
 


난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최고로 행복한 나라가 되길 바란다. 그러려면 우리는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틀린 것 하나 없는 도덕책에서 배우는 비판적 사고가 그 바탕인데, 그걸론 부족하다. 비판적 사고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고 비난만 해대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철학적으로 사고하고, 토론하고, 좋은 글과 지식들을 많이 읽고, 그것을 글과 말로 표현하는 교육이 무엇보다 강조돼야 한다. 

오지선다는 삼성전자 직원 양성에는 최고인지 몰라도, 우리나라의 창의적 발전에는 도움이 안 된다. 개인적으로 학생의 글 쓰기 포트폴리오를 초등생 때 부터 학교에서 차근차근 모으고, 대입에서는 반드시 모든 학생이 글 쓰기 능력을 보여주어, 수능 점수와 함께 종합적으로 평가해 합격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는 내로라 하는 명문대를 나왔지만, 내가 들었던 몇몇 토론 수업 수준은……….. 개판이었다.  








<후반전>

앞서 말했듯이 후반전에는 내가 감명 깊게 읽은 구절들을 위주로 모았다. 직장 생활에 대한 부분도 새겨 들을 부분이 분명 매우 많았으나, 솔직히 그렇게 와 닿지 않기도 했고, 과감히 배제했음을 다시한번 말씀드린다. 


“똑똑한 사람은 일을, 배려하는 사람은 조직을 이끈다”

이 글에서도 알 수 있듯, 나는 배려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똑똑한 사람은 일을 이끌고 배려하는 사람은 조직을 이끈다고 하신 말씀이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한 회사의 대표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때론 부드럽게 감정을 어루만지고 선후배와 동료들을 배려하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적으로 친하지 않은 사람도 아우를 수 있는 포용력을 갖추고 싶다. 


“평생직장 보다는 평생직업을 생각해야 한다”
매우 동의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평생직업이란 어떤 일이 돼야 할까? 우리가 어렸을 때 슬기로운 생활 시간(혹은 도덕 시간)에 지겹게 배운 것과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이 결합되는 것이 베스트다. (교과서는 하나도 틀린 말씀이 없다. 특히 도덕은)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일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난 좋아하는 일에 더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루 중 깨어있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일을 하면서 보낸다. 근데 일이 재미없다? 하루의 반을 재미 없이 시작하고, 그 결과 나머지 절반도 무기력하게 망쳐버린다. 일은 재밌어야 한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아주 깊고 심오하게 탐구해야 한다.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 
 

여기서 아주 깊고 심오하게 탐오한다는 것은, 단순히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고, 대화하기를 좋아하고 뭐 이런 기호나 취미의 수준과는 다르다. 내가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 때 에너지가 솟아나고 열정을 쏟을 수 있는지 문장 단위로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면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에너지가 솟는데, 특히 사업 전략이나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배우는 게 너무 재밌어”와 같은 식이다. 구체적이면 구체적일수록 좋다. 최소 30초 이상 왜 좋아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일을 평생 해도 행복할 것이다. 나는 그렇다. 잘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다. 좋아하면 노력하고, 노력하면 잘하게 된다. 그래서 난 성실은 후순위라고 생각한다. 
 
 
 
 

이강인 파리생재르맹


이강인이 축구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파리생제르망에서 음바페에게 패스를 찔러넣고, 챔스에서 첫 골을 터뜨릴 수 있었을까? 물론 운동과 같은 예체능의 영역은 특히나 천부적 재능도 필요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강인이 될 필요는 없다. 삼성전자의 사장이 될 필요도 없다. 우리가 행복할 정도의 재능만 있으면 되고, 나머지는 노력으로 충분히 채울 수 있다. 중요한 건 그만큼의 노력을 할만큼 좋아하느냐 라고 생각한다. 이것이야 말로 이 책에서 말하는 역동적 안정이자 균형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직장인이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공부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노력하기로 결정하는 건 결국 본인의 선택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직장은 그냥 월급만 나오면 되는 ATM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다. 그 누구도 타인의 인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부모도. 
 



이 책에서 성실만큼 많이 나오는 단어가 열정인데, 난 이 말을 “순수함”이라고 재정의하고 싶다. 순진함과 순수함이 다르다는 것은 대부분 알 것이다. 그러나 “순수함에 대한 너의 정의는 뭐야?”라고 묻는다면 대부분 깊은 침묵과 고민에 빠진다. 내가 고민의 시간을 좀 줄여주자면, 순수함이란 올바른 가치관을 바탕으로 삶의 목표와 방향을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무모할만큼 도전하는 힘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순수함을 가진 사람은 넘어져도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실패가 두렵지 않다. 자신은 언젠가 성공할 것이라는 근거 있는 강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근거 없는 믿음은 몽상일 뿐이다. 근거 있는 믿음은 희망이 된다. 순수한 사람은 희망을 바탕으로 끝없이 도전하며 결국 해낸다. 난 그래서 순수함이 가장 위대한 힘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사람들을 사랑한다.  


내가 만약 오늘 할 일을 미루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그 일이 하기 싫은 일이라는 뜻이다. 좋아하는 일은 미루지 않는다. 빨리 하고싶어서 죽겠는 게 정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에게 맞는 성격의 일을 찾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나에겐 유튜브에 콘텐츠를 올리는 일이 나와 참 잘 맞는 것 같다. 바로바로 조회수가 나오고 그 성과들을 보며 일할 동기를 부여 받는다. 어떻게 하면 더 잘 할지 개선점을 찾고 적용하기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좋아하는 일이라는 말에는 나의 성향과 잘 맞는 일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이직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다. 아니 한 열마디 정도? 이직할 때 주변의 모두가 반대하지 않고 박수쳐주지 않는 이직을 하라는 건, 남의 판단에 내 선택과 시간을 맡기는 일이고,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다. 그러고 나중에 이직하고 나서 맘에 안 들면 그 모든 사람을 탓할 것인가? 

위에서 말한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면, 순수하게 좇아야 한다. 남의 말에 흔들려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참고하는 것은 좋으나, 결정은 내가 한다는 생각을 확고히 해야 한다. 정말로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다시 한 번 틀린 말 하나 없는 도덕책에 나와있듯, 남들이 YES라고 할 때 NOPE! 이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99%, 아니 99.9%의 사람들은 똑같이 생각한다. 다른 생각을 하는 0.1%의 사람만이 성공한다. 올바른 목표를 설정하고(돈 그 자체는 절대 올바른 목표가 될 수 없다), 끝까지 순순히 자신의 길을 가기만 하면 된다. 남들이 어디가 좋은 직장이라고 하든, 어디가 안 좋은 직장이라고 하든, 당신이 가고 싶은 직장을 가라. 퇴사하고 싶으면, 퇴사 해라. 너 자신을 알고, 믿고, 따르라. 

 


고전을 읽는 것도 좋지만, 괜히 어려운 책 읽는다고 폼 잡지 말고 잘 읽히는 책 부터 읽어라. 중학생용 논어가 잘 읽히면 그것부터 읽어라. 아니면 그냥 현대 인문학 책을 읽어라. 책 들고 다니기 귀찮으면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전자책이라도 읽어라. 고대 로마 시대 위인까지 공부할 필요도 없다. 스티브잡스나 일론 머스크의 자서전을 읽어라. 그게 훨씬 재밌고 당신의 현실과 밀접하다. 도움이 되는 책을 읽고, 공부하고, 사고하는 게 중요하지… 어떤 제목을 가진 책을 읽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라. 빨리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좋다. 고동진 사장님도 초등학교 5학년 때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공포를 느꼈다고 말씀하시는데, 믿든지 말든지 나도 그즈음 그랬다. 정확히는 4학년 때 학원을 오가는 셔틀버스 안에서 창 밖을 내다보며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와 관련된 꼬리 잇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졌던 것 같다. 사촌 누나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처키를 하도 많이 보여줘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무튼 그랬다. 

죽음을 생각한다는 건,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지를 고민하는 것과 같다.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유시민 작가님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나오는 말이다. 더 빨리 죽음에 대해 고민할수록, 더 빨리 내 남은 인생을 설계할 것이고, 그럼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자연히 행동하게 된다. 내 설계를 중간에 뜯어 고쳐야 하면 어떡하나요? 같은 쓸 데 없는 고민은 하지마라. 원래 설계도는 고치라고 있는 거다. 죽음이 삶의 원동력이라는 것은 슬프게도 역설적이지만, 그렇기에 인생이 가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도깨비가 된 공유는 행복하지 않았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며,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너무나 멋진 글을 써주신 고동진 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참고로 전 삼성전자 임직원은 아닙니다. 임직원이면 이렇게 까는(?) 글은 못 쓰겠지요 ㅎㅎㅎ 
 
좋은 내용이 훨씬 많은 책입니다. 특히 후반부의 희생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 등 훌륭한 인간으로서 갖춰야할 덕목은 두고두고 되새기겠습니다. 이 글의 기획과 맞지 않아 다 소개드리지 못해 아쉬울 따름입니다.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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